루드비히가 교단의 사냥꾼으로 전면에 나서기 시작하던 무렵으로 마리아는 기억했다. 언제나 여유를 잃지 않았던 게르만이 이따금씩 초조함을 내비치기 시작하던 것이. 존경하는 스승에 대한 마음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가로막고 있었기에, 마리아는 그저 게르만이 계속되는 사냥으로 지쳤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마리아는 게르만의 제자들 중에서 가장 우수했고, 가장 아름다웠다....
"여기가 사냥꾼들의 공방이네. 막 공방을 열었기 때문에 좀 초라하지만 우선 필요한 무기와 사냥도구들은 충분할 테니, 재량껏 사용하면 될 거야. " 야수에 비교하면 너무도 왜소해 보이는, 이제 막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남자가 마리아를 사냥꾼의 공방으로 안내했다. 마리아가 상상했던 게르만은 좀 더 키가 크고 듬직한, 열혈 청년의 모습이었지만, 실제로 본 게르만...
만월이 밤하늘을 비추는 혈족의 밤. 끈적한 붉은 액체는 카인허스트의 귀족을 자처하는 자들의 잔을 가득 채워 성 내의 모든 이들을 황홀경으로 이끌고 있었다. 그 액체는 바로 강렬한 쾌감을 전신의 혈관으로 퍼뜨리는, 불사의 여왕 애나리스의 피였다. 애나리스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자들은 그녀의 피를 마시고, 그녀와 같은 혈족이 되어 쾌락을 탐닉하고, 애나리스에게 ...
내가 왜 글을 쓰는가에 대해서 제대로 고민해보기 시작한 계기는 첫 번째 회지를 내면서 진행했던 우리끼리의 대담이었다. "이 글은 누구를 대상으로 하고 썼습니까?"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지점이었다. 연습장 한 귀퉁이 여백만 있으면 언제든지 무엇인가를 끄적이기를 10여년, 그저 나는 글을 쓰는 것이 좋다고만 생각했다. 막연히 작가가 되어서 소설책을 내고,...
2초 남짓한 짧은 시간 내에, 사람이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지 몰랐다. 어째서? 왜? 에서 시작된 생각은 15년 전 우리의 마지막 순간까지 재빠르게 내달음질쳤다. 소주와 담배냄새가 옅게 뒤엉킨 숨결이 느껴지던, 이제는 머릿 속에서 희미해진 늦여름밤의 마지막 키스. 더는 후회도 반추도 하지 않겠다 다짐한 마음이 무색해지도록 머릿 속이 빠르게 뒤엉키기...
의식하고 있든, 의식하고 있지 않았든, 항상 한 발을 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난 이 곳에 속하지 않아. 난 이들과는 달라. 필요하다면, 아니 더는 이 곳을 견딜 수가 없다면, 여기를 떠나버리면 그만이다. 난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고, 그럴 의지가 있다. 나를 받아줄 곳도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라는 생각이 마음 한구석에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그 마음이...
제대로 이해도 하지 못한 경제이론서를 펼쳐들고 한참을 낑낑대며, 대학에 입학해 처음 써보는 '리포트'라는 걸 마무리하고 고개를 들었다. 어둡던 창밖이 희뿌옇게 변해가기 시작하고, 밤새 켜둔 형광등 빛이 처음만큼 밝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게 밤샘이라는 거구나, 라고 생각하자마자 창문 틈 사이로 새벽의 차가운 공기가 들어와 오른쪽 뺨을 훑고 지나갔다. 머릿 속...
"아아.. 이 괴물.. 너를 저주한다. 모든 사냥꾼에게 죽음을!" 입안에 피가 가득차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에일린이 토해내듯 말했다. 사냥꾼들이 있는 한 이 악몽은 끝나지 않아. 사냥을 하면서 피에 취하지 않는 사냥꾼은 거의 없지. 사냥꾼따위가 야수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해? 너의 그 오만함은 죽음으로 처벌받으리라. 내 자비의 칼날로 너의 악몽을 내가...
한참만에 다시 글을 써야겠다는 마음이 들고, 조금씩 뭔가를 써나가던 중에 포스타입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쓴 책을 판 수입으로 생활이 가능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야심찬 꿈은 이제 포기했지만, 그렇다고 글을 쓰는 것까지 포기하진 않았습니다. 어떻게 계속할 수 있을지, 어떤 결과가 나올지, 이 앞에 무엇이 있을지 전혀 모르지만, 그래도 다시, 시작해봅니다.
전업 글쟁이를 꿈꿨던, 전업 글쟁이는 포기했지만, 글은 포기하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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