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운하지 못한 기분으로 진료소에서 나와 다음으로 향한 곳은 길버트의 집이었다. 같은 외지인이라는 이유로 나를 도와주려 했던 그의 창가에는 아직 그가 살아있음을 애써 알리듯 야수를 쫓는 향이 타고 있었다. "쿨럭쿨럭쿨럭..." 길버트의 기침은 나아질 기미가 전혀 없이 나빠지기만 하는 것 같았다. 그의 창문을 두드리며 말을 건넸다. "길버트, 오에돈 예배당으로...
개스코인이 가지고 있던 열쇠는 성당 구역으로 이어지는 지하 묘지의 철문을 여는 열쇠였다. 길은 하수구 같은 곳으로 이어졌고, 그 끝에는 위로 이어진 사다리가 있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자 누군가가 서재로 썼던 것 같은 작은 방이 있었다. 엄청난 양의 책으로 빼곡히 사방이 둘러싸인 방이었다. 두 개의 책상 위에는 낡아서 글씨를 분간하기 어려운 종이들이 엉망...
사냥꾼이라는 이름으로 야수를 사냥하기 시작한 지 고작 반나절도 지나지 않았지만, 피와 야수의 냄새만큼은 바로 구분할 수 있을 만큼 질리게 맡았다. 반나절이라는 것은 아직까지 다 떨어지지 않은 해를 보고 생각하는 것일뿐, 실제 내 감각은 며칠은 지난 것 같았다. 마치 꿈을 꿀 때는 현실과는 다른 시간감각이 적용되는 것처럼 묘하게 뒤틀려버린 시간 감각. 피 냄...
지상으로 올라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살폈다. 사다리 앞은 바로 도수교였고, 전방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길을 제대로 찾았다고 생각하며, 도수교를 건너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당 구역으로 떠나는 모험은 쉽사리 끝나지 않고, 나를 편하게 성당 구역으로 보내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어 보이는 자경단이 도수교 끝 편에 서 있었다. 다섯 명. 나를...
불이 켜진 창문 옆에 향이 타고 있었다. 생존자가 있는 모양이었다. 야남 사람들의 냉대에 다시는 그들과 말을 섞고 싶지 않았지만, 오르골 소리에 마음이 끌려 창문을 두드리고 말았다. "누구세요? 그 냄새는.. 사냥꾼이신가요?" 소녀의 목소리다. 이제 겨우 10살쯤 되었을까? "네 말이 맞아. 난 사냥꾼이야." 소녀를 놀라게 하고 싶지 않아 나는 최대한 상냥...
하역장으로 들어서는 입구 옆에 위치한 집 대문 앞에는 야수를 쫓는 향이 걸려있었다. 그 집 앞에서 개 한 마리가 문을 부수려는 듯 난폭하게 짖어대며 앞발로 문을 긁어댔다. 저리 가라고 소리 지르는 늙은 여자의 목소리가 문밖으로 새어 나왔다. 문에만 정신이 팔린 사냥개를 처리하는 데는 수은탄 한 발이면 충분했다. 탕하는 총소리와 함께 개가 쓰러지고 주변의 소...
야수를 사냥하고 나면 어김없이 황홀감이 느껴진다. 아직 몇 번 느껴보지도 못한, 피가 요동치고 혈관이 욱신거리는 이 느낌에 벌써 중독된 것 같았다. 피의 울림이 주는 쾌락을 만끽하며 성당 구역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걸었다. 하지만 멀리서 보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대교에서 성당 구역으로 이어지는 길은 커다란 철창살로 가로막혀 있었고, 철창살을 조작할 수 있는...
두 마리의 야수를 모두 해치운 후에야 횃불을 켜고 내가 굴러떨어진 어두컴컴한 실내를 둘러보았다. 실내에는 사람도 야수도 보이지 않았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 집의 주인은 야수가 되었거나, 야수에게 죽임을 당했거나 어느 쪽이든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다. 대교로 가는 길에 연결된 계단 바로 옆에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다. 1층의 안쪽 구석...
사다리를 모두 올라가자 쿨럭쿨럭하는 폐 깊은 곳을 긁어내는 듯한 기침 소리가 정면에 보이는 집에서 흘러나온다. 그 집 왼쪽 편에 난 창문에는 야수를 쫓는 효과가 있는 향이 타고 있었다. 등불에 야수를 쫓는 향료를 넣어 태우면 좀 더 붉은 빛이 감도는 빛이 나며, 그 빛은 집 안에 살아있는 사람이 있다는 표식이 되었다. 창문으로 조심스레 다가가 기침을 하던 ...
피 웅덩이에서 시체의 살점을 뜯어먹는 야수의 소리가 가장 먼저 내 감각을 자극했다. 처음 이 진료소에서 깨어났을 때보다 감각이 훨씬 예민해졌는지 야수가 끈적한 피에 담근 발을 움직일 때마다 바닥에 미끄러지는 소리와 시체의 살점이 뜯겨나가는 소리, 야수의 흥분한 거친 숨소리가 바로 귓가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현실로 돌아온 나는 오른손에는 톱칼을, 왼손에는 ...
건물의 내부는 그리 넓지 않은 단칸방으로 되어 있었다. 내가 들어온 입구의 우측에 벽난로가 타고 있었다. 벽난로의 왼쪽에는 무기를 수리하고 개조할 수 있는 작업대가 있었다. 무기는 보이지 않았지만, 붉은 돌의 크고 작은 파편들이 작업대 위에 흩어져있었다. 조금 전 피를 이용해 육체와 무기를 강화한다고 하던 게르만의 말을 떠올려보면 저 붉은 돌이 피일지도 모...
눈을 뜨자 낯선 천장이 보인다. 몽롱한 기분이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묘하게 몸이 가벼워진 듯 몸 안의 피가 소용돌이치는 듯 나 자신이 아닌 무엇인가를 몸 안에 담고 있는 느낌과 내 안에 있던 무엇이 사라진 느낌이 공존하는 이상한 기분이다. 수혈을 받은 왼팔에는 주사바늘 대신 지저분한 붕대가 감겨있었다. 붕대에는 검붉은 피가 얼룩져있었지만 이것이 내 ...
전업 글쟁이를 꿈꿨던, 전업 글쟁이는 포기했지만, 글은 포기하지 않은.
자유로운 창작이 가능한 기본 포스트
소장본, 굿즈 등 실물 상품을 판매하는 스토어
정기 후원을 시작하시겠습니까?
설정한 기간의 데이터를 파일로 다운로드합니다. 보고서 파일 생성에는 최대 3분이 소요됩니다.
포인트 자동 충전을 해지합니다. 해지하지 않고도 ‘자동 충전 설정 변경하기' 버튼을 눌러 포인트 자동 충전 설정을 변경할 수 있어요. 설정을 변경하고 편리한 자동 충전을 계속 이용해보세요.
중복으로 선택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