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아아아아악!" 길버트는 비명을 지르며 눈을 떴다. 낯선 천장, 낯선 방. 딱딱한 침대, 낡고 작은 책상. 길버트가 깨어난 곳은 치료실이 아닌 교단에서 그에게 제공한 작은 방이었다. 수혈을 받은 그의 왼팔에는 주사바늘대신 깨끗한 붕대가 감겨있었다. 피에 젖었던 오른손은 깨끗하게 닦여있었고, 수혈을 받기 위해 갈아입었던 교단이 제공한 회색 로브에만 얼룩덜룩...
"야남이란 도시의 치유교단에 대해서 들어보셨습니까?" 순백의 로브를 입은, 불쾌하지 않지만 묘하게 비릿한 체취를 풍기는 성직자는 로브와 같은 소재의 순백의 후드를 쓰고 곱게 자수를 놓은 레이스 장갑을 끼고 있었다. 길버트와 그의 어머니 메리 실버글로브는 차분하고 나즈막한 여자의 목소리를 놓칠새라 성직자에게 온 신경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야남의 치유교단에서...
환영 속의 주인공은 게르만과 인형이다. 게르만은 지금처럼 휠체어에 타고 있지도 않았고, 내가 본 모습보다 더 젊어보인다. 아마도 과거의 환영인 것 같다. 처음 사냥꾼의 꿈에서 게르만을 만났을 때, 그가 인형을 언급하는 말투는 전혀 호의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환영 속의 게르만은 세상 누구보다도 애정이 가득 담긴 시선을 인형에게 보내며, 온 마음을 담아 땀범벅...
* 파키소님의 리퀘로 쓴 글입니다. "주먹충 아가씨! 심심하지 않아?" 쾌활하다는 말로는 전부 다 표현할 수 없는, 카랑카랑하고 장난끼 가득한 목소리가, 며칠 간의 특별 수사를 마치고 직원휴게실에서 잠깐의 휴식을 즐기던 바이의 오른쪽 귀를 울린다. 분홍 딸기 크림이 잔뜩 올려진 컵케이크를 크게 한입 베물던 바이는 입안에서 우물거리던 간식을 제대로 삼키지도 ...
신기한 일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예배당 출구 오른편에 굳게 닫혀 있던 석문이 마치 처음부터 그랬다는 듯 활짝 열려있다. 마치, 게르만이 말한대로 내가 가야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아아, 사냥꾼. 아직 살아있었군. 얼마든지 편한대로 머물러, 여긴 안전한 곳이니까." 거적떼기가 날 발견하고는 어색하게 말을 건다. "다음에 나갈 때는 내 부탁을 잊...
야수는 인간의 몸과 비슷한 형태로 생겼지만, 네발짐승처럼 사지를 모두 이용해 천천히 나와의 간격을 좁혀온다. 적당히 간격이 벌어지면 앞발을 휘두르며 날카로운 발톱으로 내 목덜미를 노렸다. 허공을 가른 야수의 발톱이 바닥을 파고들 듯 바닥을 긁을 때마다 끼이이익하는 불쾌한 날카로운 소리가 내 몸을 찔러댄다. 야남의 대교에서 마주했던 야수에 비교하자면, 볼품없...
"아아아아아악!!" 나는 크게 비명을 내지르며 그대로 바닥에 나뒹굴었다. 뜨끈하고 미끈한 것이 바닥에 닿은 등에서 느껴졌다. 몸을 일으킬 겨를도 없이 또다시 공격이 이어졌다. 반사적으로 몸을 옆으로 굴리자 둔탁한 소리와 함께 창에 톱날이 달린 무기가 방금 전 내가 쓰러져 있던 자리의 바닥으로 파고드는 것이 보였다. 사냥꾼이다. 나를 노리는 것은 야수의 발톱...
열린 문 앞에 펼쳐진, 황혼에 물든 구시가지 거리는 눈이 따갑도록 짙은 연기와 매캐한 탄 내로 가득했다.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십자가에 야수를 매달아 태우는 불길이 타닥타닥하는 소리를 내며 끝없이 타들어가고, 불길과 연기 때문인지 후끈한 열기가 목덜미를 훑으며 지나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따금씩 멀리에서 그르렁대는 야수들의 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정의감 넘치고 모든 일이 분명한 K에게도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순간들이 찾아온다. 지금이 바로 그런 순간이다. 앵벌이. 라는 단어였다. 요즘은 그 수가 예전에 비해 현저히 감소하긴 했지만 아직도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서 간혹 볼 수 있다. 다리가 있었을 허리 아래에는 바람빠진 반원의 타이어가 자리를 대신 하고 냄새나는 상체로는 이제는 사람들이 별로 사지...
몇 발의 총을 쏘았는지도 모른 채 돼지가 더는 움직이지 않아 쿵쿵하는 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끝없이 총을 쏘았다. 다시 지하수로 안으로 들어가 축 늘어진 산더미만한 돼지의 옆구리에서 톱칼을 뽑아내려고 양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힘을 주었다. 하지만 좀처럼 톱칼이 뽑히지 않았다. 그래서 톱칼을 뽑는 대신 옆구리에 꽂힌 방향을 따라 돼지의 살점을 갈라버리기로 했다....
공방에서 나오자 인형이 나를 바라보았다. "왜 그래?" "훌륭한 사냥꾼님, 사자들이 어쩐지 할 말이 있는 것 같군요. 저기, 작은 수반에 있는 아이들이 보이시나요?" 인형이 가리킨 곳에는 허리 높이 정도의 작은 수반이 있었다. 그 안에는 사자들이 아웅다웅하는 모습으로 뭔가를 들고 나를 향해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호기심이 동한 나는 수반으로 걸어가 사자들을 ...
혹자는 사냥꾼의 꿈이라고 부르고 혹자는 사냥꾼의 악몽이라 부르는, 은밀한 피의 계약을 한 자들이 생과 사를 넘나들 수 있는 모호한 경계의 세계. 이 세계를 꿈과 악몽으로 구분하여 부르는 자들도 있으나, 사실 사냥꾼들이 꾸는 꿈은 모두 악몽이며, 저주이다. 야남의 높은 시계탑 뒤에 감추어진, 치유 교단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악몽. 그리고 그 악몽의 ...
전업 글쟁이를 꿈꿨던, 전업 글쟁이는 포기했지만, 글은 포기하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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